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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잃어 정지신호에도 주행하다가 교통사고를 내 중상을 입은 택시기사가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신호위반으로 사고가 발생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미 정상적으로 운전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택시기사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사고 경위를 진술하지 못했다.

블랙박스, 의식 잃은 정황 기록
공단 “신호위반은 범죄행위” 기각

1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손혜정 판사)은 택시기사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공단의 항소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택시회사 소속 기사인 A씨는 2020년 2월 운전하면서 적색 신호에도 직진하다가 교차로에 진입한 차량과 충돌했다. 이 사고로 A씨는 경추 골절과 심정지 등을 진단받았다. 상대 차량 운전자는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그런데 A씨는 사고 당시 이미 의식이 없었던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택시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충돌 전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또 신호를 위반했는데도 교차로를 빠르게 통과하기 위해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충돌 직전에 브레이크를 밟거나 핸들을 꺾는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이후 A씨는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신호위반에 따른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산재보험법은 근로자의 범죄행위로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다.

A씨는 재심사청구도 기각되자 지난해 9월 소송을 냈다. A씨측은 “24시간 격일제 근무를 하며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졸음이나 지병인 불안전 협심증 발작 등으로 이미 의식이 없는 신체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공단 ‘과로시 운전금지’ 위반 주장도
법원 “비정상 신체상태, 피로 누적됐을 것”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사고의 원인이 ‘범죄행위’라는 점이 증명됐다고 할 수 없다”며 “오히려 택시기사로서 A씨가 수행하던 업무에 내재하거나 통상 수반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사고 당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블랙박스 영상을 비춰 볼 때, A씨가 불상의 이유로 이미 의식을 잃었거나 운전을 함에 있어 필요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신체상태가 아니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설명했다.

공단은 재판에서 도로교통법이 정한 ‘과로한 때의 운전금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추가로 주장했다. 중과실 이상의 주의의무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공단의 주장은 처분 근거로 삼은 당초의 사유(신호위반)와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동일하다고 볼 수 없어 처분사유로 추가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씨가 과로로 인한 졸음운전을 해 사고가 발생했더라도, 택시운전사로서 24시간 격일제 근무를 하며 취침 시간의 불규칙, 수면부족, 생활리듬 및 생체리듬의 혼란 등으로 피로가 상당히 누적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근로자의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공단이 범죄행위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A씨를 대리한 안혜진 변호사(법무법인 더보상)는 “A씨의 경우 재해 발생 경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체 사고 경위를 따져 봤을 때 신호위반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