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와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주최로 28일 오후 서울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근로시간 개편안 유가족, 전문가 간담회에서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가 발언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쿠팡이란 회사는,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27세의 건강한 청년이 1년6개월도 채 못 버티고 일하다 죽을 수 있는 곳이구나. 죽은 아들에게도, 남은 2명의 아이들에게도 이런 현실이 미안해요. (정부는) 얼마나 더 많이 희생하길 바라나요.”(쿠팡 노동자 고 장덕준씨 어머니 박미숙씨)

“정부가 진정으로 노동자 휴식권을 보장하길 원한다면 이번 근로시간 개편안은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 맞습니다.”(온라인 강의업체 노동자 고 장민순씨 언니 장향미씨)

주 최대 69시간 근무(주 6일 근무 기준)가 가능한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 대해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들이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과로로 인한 죽음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며 정부 계획 폐기를 촉구했다.

나이와 남녀를 가리지 않은 ‘과로사’
“장시간 노동 없는 불규칙 노동도 문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과로사 유가족 기자간담회’에서 과로사·과로자살 유가족들은 과로와 불규칙 노동으로 접한 가족의 죽음을 증언했다. 간담회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주최했다.

3개월간 평균 주 58시간을 넘게 일하다 2020년 10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고 장덕준씨는 지병이 없는 27세 남성이었다. 운동을 좋아해 태권도 4단을 딴 건강한 아들이었지만 쿠팡물류센터에서 일한지 1년4개월 만에 숨졌다. 온라인 강의업체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일한 장민순(사망 당시 36세)씨는 2018년 1월 과로와 직장내 괴롭힘에 시달린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2개월을 근무하며 주 12시간 이상 연장근로를 46주나 했다. 전선제조업체 대신전선에서 일했던 최완순(사망 당시 55세)씨는 2016년 1월19일 새벽 4시께 일을 하다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매달 한 번은 주말에 연속 30시간 가량을 일했고 야간조일때는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30분까지 13시간30분을 꼬박 일했다. 20대 남성, 30대 여성, 50대 남성이었던 이들의 사인은 모두 과로다.

최완순씨의 아내 김예숙씨는 “남편의 사고로 업체 내 근로시간이 조정되는 등 노동조건이 개선됐는데 정부가 근로시간을 개편하면 연장근로가 다시 늘어날 것”이라며 “사람을 기계로 아는 것인지 정말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과로가 사람을 죽게 만든다는 건 연구로 입증된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과로사에 관한 연구가 가장 많이 이뤄진 나라다. 김형렬 가톨릭대 교수(직업환경의학) 등이 201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은 호르몬 체계를 망가뜨려 비만에 이르게 한다. 비만은 심혈관계질환 가능성을 높인다. 김 교수와 연구진이 2017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하루 단위, 주 단위의 불규칙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노동시간이 장시간이 아니어도 불안장애가 심화했다. 노동시간이 같아도 한 달에 4일 이상 주말근무를 하면 남성은 45%, 여성은 36% 우울증상이 증가한다는 연구도 있다.

김 교수는 “주 52시간 상한제만으로도 이미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충분히 유연한 상황이기에 주당 48시간, 하루 10시간을 상한으로 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이 필요하다”며 “장시간 노동이 동반되지 않는 불규칙한 노동도 건강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쿠팡, 유족에 사과 한마디 없어”

쿠팡물류센터 노동자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는 과로를 인정하지 않는 쿠팡에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이날 오전 대책위원회는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송의 시작을 알렸다. 박씨는 이날 서울동부지법에 쿠팡풀필먼트서비스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박미숙씨는 “혁신이란 말 아래 묻혀 쿠팡의 야간노동은 계속되고 있다”며 “야간노동에 대한 아무런 제약과 법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근로복지공단은 2021년 장씨의 사망을 산재로 인정했다. 이후 유족은 쿠팡에 고인의 죽음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했으나 쿠팡은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이 사건과 관련한 논의를 멈추겠다고 통보했다.

정병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쿠팡은 사업주로서 근로자가 야간 교대작업과 같이 신체적 피로가 높은 작업을 하는 경우 건강장해 예방 조치를 할 의무가 있으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물류센터 내 과로사 위험성 요인을 충분히 인지했으나 책임을 외면하고 방관해 왔다”고 주장했다.

박미숙씨는 “쿠팡은 야간노동자에게 특수건강검진을 실시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아 과태료 단돈 10만원을 물었던 것이 쿠팡이 받은 처벌의 전부”라며 “아들의 목숨과 맞바꾼 금액이 단돈 10만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고 말했다.

출처 : 매일노동뉴스